한승원의 삶과 글
한승원의 삶과 글
#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 한승원의 삶과 글, 그 깊은 강물

나는 한승원의 글을, 한강 작가를 통해서가 아닌, 진작 매료되어 있었다.
가까운 문인들에게 한승원 작가의 수필집을 자주 선물할 정도였다.
읽을 때마다 어느 바닷가 마을의 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의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를 펼치면, 마치 고요한 봄날 저녁, 해질 무렵의 서정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바닷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그 길 끝에 한승원이 서 있다. 손에는 꽃 한 송이를 들고, 뒷짐 진 채로 자신이 걸어온 생의 고갯마루들을 조용히 돌아보는 노작가의 얼굴이 그려진다.
## 바다와 함께한 유년, 그리고 문학의 뿌리
한승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다. 그의 문학은 땅에서 나왔다기보다 바다에서 길어 올린 듯하다. 장흥의 들과 바다, 비릿한 갯내음은 그의 소설 곳곳에 스며 있으며,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그의 정서와 언어의 근본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바다의 자식”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 그 바다와 함께 한 유년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강한 토속성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산문집에서도 그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 젊은 날의 방황과 글쓰기의 고통 등을 하나씩 되짚는다. 마치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꺼내 보이듯, 조용하지만 강한 어조로. 그가 사랑했던 것들과 이별했던 순간들, 슬픔을 넘긴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감사의 마음들이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 가족, 그 무심한 듯 깊은 사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에는 한승원의 가족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말수가 적고 고된 삶을 살아낸 어머니.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극진히 가족을 챙겼던 그 모습은 작가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뿌리가 되었다. 그는 “가족이란 상처가 아니라, 상처 속에서도 여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라고 썼다.
또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자녀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산문 곳곳에 묻어난다. 자식들을 문 밖으로 떠나보낸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 하지만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지극한 애정은, 독자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곱씹게 만든다.
## 작가로서의 외로움, 그러나 끝내 문학
한승원은 문단 활동도 왕성했지만, 언제나 자연과 침묵 속에서 글을 써온 사람이다. 그의 삶은 어느 의미에서 보면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본질을 꿰뚫는 렌즈로 삼았다.
“인간이란 결국 자기를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일 때 가장 빛난다”는 그의 문장은, 그가 걸어온 작가로서의 윤리와 철학을 대변한다. 특히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에서 그는 창작의 고통,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그것이 독자의 마음을 더 크게 울리는 이유다.
## 작품 세계 – 민초들의 삶과 자연의 숨결
그의 대표작인 『해일』, 『동학제』, 『아제아제 바라아제』, 『남도 사람』 등을 통해 우리는 한승원이 어떻게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초들의 삶을 그려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역사의 뒤편에 밀려난 사람들, 이름 없는 존재들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의 소설이 때로는 전설 같고, 때로는 실화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그리고 그의 언어는 느리고 묵직하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신념처럼, 그의 글은 함축적이며 서정적이다. 마치 풍경화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속에 남는 울림이 있다.
##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라는 제목은 단순한 귀향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집, 혹은 존재의 원형을 뜻한다. 꽃을 꺾는다는 것은 그저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다.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그것마저 사랑하려는 자세다.
이 산문집은 단순히 작가의 자전적 고백이 아닌, 우리 모두가 ‘돌아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감정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한승원의 글은 문학을 넘어 한 인간의 기록이며, 동시에 독자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덧붙이며**
한승원의 글을 읽고 있으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남도 어느 해안가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의 삶과 글은 복잡하지 않다. 다만 정직하고 조용하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문득 눈물이 솟구친다. 아마도 그것이 진짜 문학이 가진 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