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도시락만의 묘미**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던 어느 봄날 아침, 엄마는 새벽부터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작은 주방 가득히 퍼지는 참기름 향과 미나리의 풋풋한 냄새는 오늘이 평범한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을 한데 놓고, 엄마는 각각 데치고 볶고 무치기를 반복했다. 고사리는 들기름에 살살 볶아 부드럽게 만들고, 도라지는 소금에 절여 아린 맛을 빼고 고추가루와 마늘을 넣어 매콤하게 무쳤다. 시금치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윤기를 더했다. 각자의 색깔과 향을 고스란히 살린 나물들이 차례로 쟁반 위에 올려질 때마다 주방은 점점 봄의 정취로 채워졌다.
잡채는 엄마의 손맛이 가장 잘 드러나는 요리 중 하나였다. 당면을 삶아 헹군 후 간장, 참기름, 깨소금으로 기본 양념을 해놓고, 채 썬 양파, 당근, 표고버섯, 애호박, 시금치, 돼지고기를 하나하나 따로 볶아 넣는다. 따로 볶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지만, 각 재료가 가진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엄마는 늘 말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재료를 큰 볼에 넣고 한 손으로 조심스레 비벼내면, 그 순간 잡채 특유의 반짝이는 광택과 고소하고 짭조름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찰밥은 소풍 도시락의 하이라이트였다. 흰쌀에 찹쌀을 섞고, 밤, 대추, 은행, 콩, 잣을 듬뿍 넣어 찐 찰밥은 단단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으로 입 안을 풍성하게 채운다. 살짝 단맛이 도는 이 찰밥은 고기반찬 없이도 충분히 맛있었다. 엄마는 찰밥을 조심스럽게 삼각형 모양으로 뭉쳐 한 김 식힌 후 깨소금을 뿌려 김으로 감쌌다. 단출하면서도 손에 들고 먹기 좋게 만든 찰밥 주먹밥은 도시락통 한편을 든든히 차지했다.
반찬으로는 멸치볶음, 계란말이, 깻잎장아찌, 그리고 직접 담근 열무김치가 빠지지 않았다. 멸치볶음은 자잘한 멸치를 바삭하게 볶은 후 조청을 약간 넣어 달짝지근하게 만들었고, 계란말이는 부추와 당근을 넣어 색을 살렸다. 엄마는 도시락 속 하나하나의 반찬들이 지루하지 않게 서로 다른 맛을 내도록 늘 신경을 썼다. 짠맛, 단맛, 고소한 맛, 새콤한 맛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이라고 했다.
모든 도시락을 싸고 나면, 엄마는 도시락통 위에 꽃무늬 손수건을 덮어 묶었다. 손수건을 묶는 그 손길엔 오래된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가족 모두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오래된 한국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펼치는 순간은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었다. 윤기 나는 잡채를 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찰밥 주먹밥을 손으로 들고 한 입, 그리고 시금치나물을 얹은 김치 한 조각을 곁들이면, 마치 자연 속에서 한정식을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멀리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한 햇볕과 엄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 그리고 가족이 함께 모여 앉은 이 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행복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엔 간식으로 싸온 유자차와 약과를 꺼내어 달달하게 입가심을 했다. 어느새 공원에는 나물향과 찰밥의 구수한 냄새가 어우러져 봄을 닮은 하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한식은 정성이다. 그날의 도시락 속에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계절과 손맛, 그리고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잡채 한 젓가락에, 나물 하나하나에, 그리고 찰밥 한 알 한 알에 담긴 마음이 가족의 웃음 속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인의 소풍을, 봄날의 한 끼를, 그리고 서로를 다시 한번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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